실리콘밸리 소고

서승우 교수

서승우 교수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보내고 있는 연구년도 벌써 중반을 지나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의생활에 적응할 만하니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판이다. 여기서의 생활도 서울에서만큼이나 바쁘게 돌아간다. 스탠포드 대학은 실리콘밸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늘 방문객들로 넘쳐나고 기술포럼, 워크숍, 초청강연 등이 다 쫓아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불과 6년 전만해도 버블 경제 뒤끝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 실리콘밸리의 상황은 다시 경기가 살아나 일자리가 창출되고 덩달아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분위기이다. 연구개발에서도 투자가 되살아나 미국은 2013년도 세계 특허 출원 건수에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최근 일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경기 호황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불붙기 시작한 소프트웨어 산업에 기인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수많은 소프트웨어 기술들은 제조, 유통,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 분야만해도 전세계 완성차 업체 상위 12곳과 유관 부품 업체들이 실리콘밸리의 앞선 소프트웨어 기술을 습득하고자 이곳에서 연구소나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 내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CARS: Center for Automotive Research at Stanford)은 이런 지역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으며 새로운 자동차 기술 발굴과 정보 교환의 허브 역할을 잘 해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리더십은 비단 기술 분야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 예정인 자동운전(Automated driving) 분야만 해도 좋은 인재들이 모여 기술뿐만 아니라 법, 사회제도, 보험제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토론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반영되어 하나씩 실행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간의 만남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자동차기술 워크숍이 SCL(Stanford Center on Longevity)와 CARS의 공동 주최로 개최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기술리더십은 미국 사회 전반,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속성인 듯하다. 큰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열린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고 합의된 결과는 신속히 법과 제도에 반영하여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 과연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자라날 수 있을까? 자동차 분야만 놓고 얘기하자면 안타깝게도 현 상황은 꽉 닫혀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현재 한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는 영역 다툼이나 주도권 싸움으로 왜곡되어 있다. 새로운 분야 기술은 자동차와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는 이유로, 원천 기술은 양산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혁신적인 수많은 아이디어들도 당장의 돈벌이와 관련성이 없어 보이면 연구 자체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니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에서 나오는 좋은 아이디어들도 수요처를 못 찾고 고사된다. 대학은 언제부터인가 업체들에 대한 인력 조달 기능을 담당하는 하청 기관으로 전락했고, 대형 국가 연구비는 특정 업체들에 편중되어 관리 기관 조차도 끌려 다닌다. 법과 제도는 각종 규제와 보수적인 사고에 막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미래 기술의 화두인 자율주행자동차가 서울 도심을 돌아다닐 날이 올 수 있을까 싶다. 과연 자동차 생산 세계 5위국이 맞을까 싶은 정도로 연구 환경은 열악하다.

국내 연구개발 상황이 이렇게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동차 기술의 큰 흐름은 전기전자기술 및 IT에 대해 더 큰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가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중장기 개발 목표가 되면서 전기전자기술 및 IT에 대한 수요는 사상 최고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센서, 통신, 제어,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수요가 크고, 관련 전공자들에 대한 채용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및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도 학문 경계를 넘어선 융합연구들을 여러 학과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심리학과 교수가 운전자의 뇌파와 운전 중 생리상태를 조사하여 자동운전시스템의 변수값 조정에 활용하고, 컴퓨터학과 교수가 최신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차량 내 제어기에 탑재하여 성능을 검증하고, 기계과 교수가 전기차에 대해 연구하며, 이동통신 전공 교수가 자동차용 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몇 가지 예일 뿐이다.

미래 자동차 기술의 승패는 소프트웨어 기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국내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기술은 양산차 기준 자립도가 10% 미만이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 험난함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기술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 간의 소통과 융합을 전제로 발전할 수 있다. 소위 “분야별 전문지식(Domain specific knowledge)”를 근간으로 이종 학문간 융합이 이루어질 때만 성공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계 유수 자동차 회사들의 연구소가 왜 실리콘밸리에 있고 그 회사들이 스탠포드 대학의 Affiliates Program에 매년 수천만원의 회비를 내면서 회원사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갈 길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prof. 서승우, New Media and Communications Newsletter 2014. 03